한해 계획세우기 Planning A Year

권소정展 / KWONSOJUNG / 權昭丁 / performance   2009_1128 ▶ 2009_1210

권소정_Planning a Year: 4월 28일, 아침 7시에 초록색 사과를 먹는다._초록색 사과_2년의 시간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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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1128_토요일_06:00pm

입장료_100원

후원_서울특별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재)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_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공(空)을 계획하기: 권소정의 "Planning a Year For a Year"에 나타난 계획, 행위, 그리고 작품 세계 - 2009년 Tucker Neel ● 『Planning A Year』에서 권소정에게 규정된 행위들은 일을 하고, 잠을 자고, 먹고, 물건을 사고, 생각하고, 훔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지침들은 미래에 실현될, 즉, 선정된 "증인"에게 이메일로 매일 전송되어 그 일년 후에 실현될 일상의 과제들로 사상된다. 각각의 행위는 간결하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메세지들은 그저 받은편지함을 채우는 무수한 메세지들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만, 곧 그것은 지켜져야 할 약속들이 된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메세지들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 드로잉, 그리고 증인들의 서명 확인들로 나날이 기록되면서 실현된다. 또 이렇게 증명을 위한 기록 작업들은 planningayear.com 이라는 온라인 디지털 저장소에 전시된다. 프로젝트가 완성될 때, 『Planning A Year』는 현재 행위와 그에 대한 과거의 의도, 그리고 의지를 연결하며, 작가의 생을 이루는 한 순간으로 포착, 요약된다. 이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잘 이해하려면, 하나하나의 행위가 이미 일년 전에 계획된 것임을 이해하면서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해야한다. 이 시간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개념적 자극은 시간 속, 자신의 신체가 완전한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며, 데자뷰 현상과 같은 멀미감을 느끼게 할수도 있다. 사람은 평생동안, 친근하지만 동시에 또 낮선 현재의 기억과 끊임없이 부대끼며, 과거에 씨앗 뿌리듯 뿌려진 계획들을 수행해 나간다. 자기가 계획한 것이라고 알아볼 수는 있지만 동시에 부분적으로 망각된 기억들과 부대끼면서 느끼는 이러한 낯선 느낌은 실연자 (實演子) 에게 있어서는 인지하기에 효과적이며, 그렇기에 이것이「Planning a year」 프로젝트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편하지만은 않은 느낌을 받아안으며,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는 이원의 사건을 통하여 어떻게 예술가의 실연에 접근하는지, 어떻게 우리가 기억을 창조하고 회상하고, 미래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공간의 예술적 창조에 호소한다. ●「Planning a year」프로젝트는, 가장 원초적인 단계에서 예술가에게 수행할 무언가를 주고, 권소정에게 그녀의 미래의 자신에게 또 다른 수행 프로젝트를 계획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일종의 격려와 위안의 몸짓이다. 창조에 있어서의 정체라는 수렁에 빠진 어떠한 예술가라도 말할 수 있듯이, 방향을 잃고 뚜렷한 목적을 갖지 못함은 예술가를 우울하고, 비생산적이고 또 위험하게 만든다. 앞을 내다보고 행동하는 예술가는 이러한 창조에 있어서의 정체기 동안 겪을 수 있는 전문성과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그 불행한 결과성에 대해 계획하고 또 복사의 기재를 계속 발전시킨다. 단순히 스튜디오를 청소하고, 친구를 불러내는 등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행 프로젝트를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할일을 미루는 행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창조의 행위만큼이나 가치있는 행위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생산적인 시간동안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으며,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다시금 작업할 수 있도록 예술가의 마음은 자유롭게 방황할 수 있기 때문이다. Adam Phillips가 얘기했듯이, "Keats는 의학 강의에 가서 자신이 시에 대한 백일몽을 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Freud는 심리분석을 고민하기 위해 오페라에 갔다. (Adam Phillips, Equals, Basic Books, New York NY: 2002, p. 145) " 「Planning a year」 프로젝트는, 우리를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한다: 어떤 것이 이 프로젝트의 "계획" 단계와 "수행"단계를 구분하게 하는가? 또 이와 같은 일년에 걸친 그 두 단계 사이의 연결 고리, 즉 이 프로젝트는, 어떤 쓸모가 있는가?

권소정_Planning a Year: 5월 4일, 눈썹 한 가닥을 내 왼쪽 눈 옆에 붙이고 하루종일 지낸다._ 눈썹, 거울_2년의 시간_2009

작업 ● 달력없이 계획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권소정의 프로젝트에서 이러한 도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달력은 이 프로젝트의 근간이다; 달력은 계획과 행위의 거리를 정의하며, 모든 작업이 그 안에서 의미를 갖게 하는 개념적인 토대가 된다. 또한 이것은 프로젝트 웹사이트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주요 수단이며 웹에 기록된 개별 수행 과제에 대한 시간 프레임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계획한 것들의 시작과 끝을 정의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달력은 달력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달력은 시간의 경과를 표시하는데 쓰이는 도구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을 표시한다는 것은 기억의 한 가지 방법이고, 또 미래의 자신에 대한 표식이다. 하지만 이는 신념에 기초한 행위이고,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기 약속의 방법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달력을 확인하는 것은 잔인한 경험이 될 것이다. 미래의 어떤 날에 완료되어야 할 일상의 일들은 새로운 공명을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문서를 갖고 있게 된 채 남겨진 것이다: 그 달력은 그 떠나간 사람이 현재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표시하는 물리적인 표식일 뿐만 아니라, 미래로부터도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표시하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권소정의 달력은 단순히 예술적인 고민, 창조, 문서화만을 위한 일시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녀가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존재와 능동성을 다시금 다지는 심리적인 위안을 미래로 확장시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 2008년 8월 16일에 계획되고 일년 후에 수행된 실연에서 권소정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한시간 동안 나의 언니와 얘기한다. / 준비물: 전화기 ● 이 행위의 결과는 2009년 8월 16일 그 프로젝트의 웹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권소정_Planning a Year: 4월 6일,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_존_2년의 시간_2009

행위: 점심에 나의 언니를 만났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 단순한 장면이지만, 잊혀지기 쉬울 수도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날짜의 유일한 행위로 기록되어 저장되면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행위 자체는 권소정과 그의 언니 모두의 존재를 약속하고 이 기록은 그 날짜에 그들이 존재했음을 확인시킨다. 이렇듯 권소정의 프로젝트는 Kawara의 잘 알려진 엽서 프로젝트를 재작업한다. 그 프로젝트에서 Kawara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라는 메세지를 엽서에 찍고 그것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엽서의 날짜는 그 작업에 실재적인 시간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서들은 Kawara가 물리적으로 계속하여 존재한다는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엽서는 마치 언젠가는 일어날 Kawara의 죽음 50년 후뿐 만 아니라 엽서가 배달된 바로 그 시간에도Kawara의 살아있는 혹은 숨을 쉬는 자신을 증명하게 된다. 보는 이가 그 엽서로부터 읽어내는 가치는 기념품 (엽서로서의)과 Kawara의 실연의 유품으로서의 (그의 수재와, 카드를 찍어내고 부치는 그의 물리적 행위) 가치인 것이다. 그의 말이 비록 현재에 머물더라도, Kawara의 작업은 "내가 ~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권소정이 암묵적으로 실연하는 것은 "내가 ~ 일 것이다" 라는 것이다. 2009년 1월 1일에 완료된 다음과 같은 행위를 미래 존재의 긍정/확인 이외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 새해의 일출을 본다. / 준비물: 새벽 4-5시에 일어나기 ● 이 작업의 내적 시학은 사건의 시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일출은 새로운 날을 의미하고, 새해로의 시간의 경과를 의미한다. 한편으로 그 사건은 그 스스로를 "실연해내는 " 행위로부터 귀결되는 하나의 증표가 된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 이 작업은 하나의 생산적인 림보로서 존재한다. 두 가지 개념적인 간극, 즉 계획과 행위라는 틀 사이에 존재하는 림보로서 말이다. 현대예술을 경험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작품 속 어디에 이 작품이 존재하는가? 이 행위는 어디에 위치하는가?" "와 같은 질문은 계도적인 질문들이다.

권소정_Planning a Year: 6월 27일, 총을 쏜다._총, 총알_2년의 시간_2009

행위하기 ● 행위는 작가가 에너지를 쏟고, 지정된 일을 수행하며 일어난다. 그러나 행위들이 인지되지 못한 채 잠복해 있는 또 다른 공간, 대조적인 두 지점, 발단과 창작의 사이에 George Kubler가 실재의 공간이라고 불렀던 그 공간은 존재한다: ● "실재성은 등대가 내뿜는 빛의 깜빡거림 사이에 존재하는 어두운 시점이다: 또한 시계 초침의 재깍거림 사이의 순간이다: 영속적인 시간 속의 미끄러짐 사이에 존재하는 공(空)이다: 과거와 미래사이의 단절이며: 굉장히 미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존재하는 돌고도는 자기장의 두 간극 사이의 격차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 존재하는 시간 사이의 멈춤이며, 사건들 사이의 공(空)이다."( George Kubler, The Shape of Time: Remarks On The History Of Things,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 1963, p. 17.) ●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어 그 다음날 수행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매일 계획하는 방식이다. 내가 내일 빨래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행위를 필연적으로 만드는 상황과 그 계획을 실현해 내는 데 밟아야 할 일련의 논리적 절차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 행위와 규정된 시간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간차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년 후에 빨래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간차로 인해 가능했던 시간적 연결고리가 완전히 파괴된다. 마치 다음과 같은 행위가 2009년 11월 13일 작가에 의해 실연될 것처럼 말이다: 금요일, 침대보를 세탁한다. / 준비물: 쿼터 동전 ● Kubler의 실제성을 빌려서 얘기하자면, 중요한 것은 권소정이 이메일을 통해 내어 보낸 침대보를 세탁하겠다는 메세지가 아니며, 또한 그 행위나 일년 후에 기인된 그 인위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개념적 공간들이 개념적인 공명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리고 항상 존재하고/존재하지 않는 실제성이 권소정의 작품의 본래 주제인 것이다.

권소정_Planning a Year: 6월 17일, 웅크린 고양이 그림자를 밟는다._웅크린 고양이_2년의 시간_2009

작업 ● Marcia Tucker (The New Museum의 건립자이며 수많은 개념주의 예술가들에게 있어서의 꿈의 대모)에게 누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인지를 물으면, "Tehching Hsieh" (Marcia Tucker, "No Title, " White Paper II for AWAKE: Art, Buddhism, and the Dimensions of Consciousness project. Unpublished, 2001. p. 6.)라고 대답한다. Hsieh는 완전한 행위적/정신적 규율과 통제를 요구하는 수년 단위의 작품을 실연하는 행위 예술가이다. 이 에세이에서 「Clock piece 」라고 알려져 있는 1980-81년 사이에 실연된 그의 행위 예술을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그 작업에서 일년 동안 매 시각마다 펀치카드(시간기록 카드)를 찍고,이 행위를 수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 작품을 마쳤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펀치카드와 사진들이었고, 이들을 시간의 흐름대로 모으자, 깨끗하게 면도된 Hsieh의 머리에서 건강한 한 웅큼의 머리카락이 돋아나는 듯이 보였다. 이 작품이 정말 "노동 " 혹은 "행위 "가 일어난 그 매 시간마다의 시간기록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들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다시 한번 Kubler의 실제성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게 된다. Marcia Tucker는 이와 같은 Hsieh의 작업들을 "삶의 기본적인 모습에 대하여 지속된 관심을 표현한 살아있는 은유… " (Ibid: p.7)라고 했다. 그렇다면, 권소정의 작품에서 그 "살아있는 은유"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인가? ● Hsieh와 권소정의 프로젝트는 증인을 필요로 한다. Hsieh는 그의 펀치 카드에 서명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 서명을 하는 것을 보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권소정의 작업은 더 복잡하고 분산된 관계의 증인들이 필요했다. 첫번째 증인은 그녀의 이메일 수신인들이었다. 디지털 가상 공간 속에서의 그들의 존재는 이 작업의 첫번째 단계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권소정이 받은 수십통의 답장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존재를 입증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또한, 그녀가 실연하게 될, 미리 규정된 행위들을 그들이 창조하고 소통하여야 함을 필요로 했다. 이는 다른 종류의 더 직접적이고 뒤얽힌 소통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는 권소정이 익명의 참여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관계할 수 있는 창구를 창조하길 요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2009년 4월 6일 / John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 / 준비물: John, 사진기 ● 권소정과 John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John의 서명이 담긴 연녹색의 증명서는 이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명한다. Hsieh의 작품과 달리, 권소정의 증거들은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도 접근이 가능하다. 행위의 증거물들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프로젝트 웹사이트로 바로 포스팅된다. 그 행위의 시간과 결과가 포스팅되는 짧은 시간의 격차, 바로 이것이 그녀의 작업에서 매우 특별한 살아있는 은유가 구체화 되는 시작점인 것이다. 「Planning A Year」에서는, Hsieh의 작업에서처럼 매일 매일이 "행위"에 의해 표시되는 공간을 창조하며, 또한 대중 매체의 도구-이메일, 인터넷, 스캐너, 유튜브, 디지털 카메라, 블로그 포스팅과 같은-를 사용하며, 노력에 대한 질문들을 구체화시킨다. 매일 이러한 행위들을 창조하고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록들의 공공 접근성이 거의 실시간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이 프로젝트가 끝나야 이 질문에 대한 더 적절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권소정과 필자는, 운이 좋게도, Otis College of Art & Design's MFA program에서 Marcia Tucker가 임종하기 바로 전 해에 그녀에게 수학할 수 있었던 학생이었다. 그 때 Marcia가 필자에게 말하길, 권소정은 수 년간 자기가 보아온 행위 예술가들 중 가장 뛰어난 예술가중 하나라며 "그녀를 눈여겨 보아라. 모든 이를 놀라게 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권소정의 「Planning a year」프로젝트에 기뻐하고 또 자랑스러워 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의 예언이 서서히 그 빛을 발하는 것을 만족스럽게 보면서 말이다. ■

권소정_Planning a Year: 3월 9일, 오늘의 지구자전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고 100번 넘어진다._ 중력_2년의 시간_2009

Charting The Void: Planning, Action, and Work in Sojung Kwon's Planning a Year For A Year By Tucker Neel, 2009 ● In Planning A Year, Sojung Kwon's prescribed actions demand she work, sleep, eat, shop, think, steal, and simply do nothing. Yet these instructions are projected into the future, as assignments to be actualized one year after they are first announced to a selection of 'witnesses' via daily emails. Each action is short, uncomplicated, and sweet. One year goes by, and these emails hold a potentiality as they fill masses of Inboxes. They are promises of what is to come. Another year passes and these actions are realized, documented daily with the help of Polaroid cameras, digital cameras, drawings, and signed certificates. These authenticating documents are displayed as a digital archive online at planningayear.com. When it's completed, Planning A Year will join the intentions of the past with actions in the present, and will, in time, encapsulate a brief moment in the artist's lifelong practice. To truly apprehend the entirety of the project one must continually jump back and forth through time, understanding that each action was set in motion a year earlier. For an interested viewer or participant, this kind of conceptual whiplash can engender a sense of queasiness akin to déjà vu, a questioning of the integrity of one's body in time. One is forever encountering a reminiscence of the present, familiar yet foreign, planted by a seeded idea from the past. This strange feeling of wrestling with a recognizable yet unmoored history is instructive and at the heart of Planning A Year. In embracing this uneasiness, the project speaks to the ineffable space of artistic creation, how we access an artist's practice and, through a turn of doubled events, explores how we create memories, recollect, and contend with the future. At its most basic level Planning A Year gives the artist something to do, provides Sojung Kwon with the opportunity to assign projects for her future self. I view this as a comforting and reassuring gesture. As any artist mired in the depths of creative paralysis can tell you, being directionless, without purpose is depressing, counterproductive, and dangerous. Proactive artists plan for this unfortunate eventuality and develop coping mechanisms to alleviate professional and financial hurt during these times of creative drought. They formulate assignments to fill time, like cleaning the studio, or calling a friend. What can seem at first to be procrastination, can in fact be as valuable as the act of creation, for in this unproductive time the mind is left to wander, the unconscious continually working and reworking the problems at hand. As Adam Phillips notes, 'Keats went to medical lectures and found himself daydreaming about poetry. Freud went to the opera to think about psychoanalysis.(Adam Phillips, Equals, Basic Books, New York NY: 2002, p. 145 )' With regards to Planning A Year, we are left to wonder what delineates the work's 'planning' phase from the 'acting' phase and what is the use of this year-long stretch of time in between? PLANNING ● It's very difficult to make a plan without a calendar, yet it's easy to overlook the importance of this instrument in Sojung's project. The calendar is the backbone of her work; it defines the distance between planning and action and provides the conceptual substrate on which all of the work is viewed. It is the primary navigation tool on the project's website, and the temporal frame for each piece presented there. Most importantly, it allows her to determine the beginnings and endings of things. Yet the calendar implies much more. A calendar is a tool used to mark the passage of time, but it's also the way we predict the future. Marking a task to be completed at a later date is a way to remember, a marker for a future self, but it's also an act of faith, a way of saying 'I will be there.' For anyone who has ever lost a loved one, finding this person's daily calendar can be a devastating experience. Mundane tasks to be completed at a later date take on new resonance. The bereaved is left holding an arrested document, a physical symbol that their loved one is not only absent from the present, but also cut off from the future. Kwon's calendar not only dictates temporal sites for artistic contemplation, creation, and documentation, but also provides psychological reassurance that she will, indeed, extend her presence, her agency as an artist, into the future. In a work assigned on August 16, 2008 and completed one year later, Sojung states: I talk to my sister for an hour. preparation: a phone The summary of the action appears on the project's website on August 16, 2009: Action: I met my sister for lunch, and we talked for over an hour. ● It's a simple scene, something that might otherwise be forgotten. But here the event is given importance, archived as the only action for this date. The action itself promises a presence for both Sojung and her sister and the documentation validates their existence on that date. In this way Kwon's project reworks On Kawara's influential postcard works, where he stamped 'I am still alive.' on postcards and mailed them to friends and colleagues. The postage date grounds the work to a specific time. Despite what they appear to say, these postcards provide no real assurance of Kawara's continued physical existence. They prove Kawara's living/breathing self, as much the minute they are delivered as they do fifty years after the artist's eventual death. What the viewer reads is immediately both a souvenir (it is a postcard) and a relic of Kawara's practice – his touch, his physical act of stamping the card, holding it, mailing it. Even though his words are in the present tense, Kawara's work actually says, 'I was.' In contrast, the many instructional pieces Kwon has yet to perform implicitly state, 'I Will Be.' How else are we to read this work to be completed on January 1, 2009, as anything but an affirmation of a future existence: I watch the new year's sunrise. preparation: getting up around 4-5 am ● This work's internal poetics seem aptly appropriate for the date in question. The sunrise marks a new day, the passage of time into a new year. But it is the testimony resulting from this action that will, in fact, 'make' the piece. At the time of this writing the piece exists in a productive limbo, caught in between two poles: Planning and action. While it may seem obvious to anyone accustomed to experiencing Contemporary Art, it is instructive to ask, 'where is the work in this piece? Where do we locate the action?' ACTING ● Action obviously occurs when Kwon exerts energy, completes her assignments. But is there another space where actions lurk undetected, between the contrasting points of inception and creation, in what George Kubler has called the space of actuality: 'Actuality is when the lighthouse is dark between flashes: it is the instant between the ticks of the watch: it is a void interval slipping forever through time: the rupture between past and future: the gap at the poles of the revolving magnetic field, infinitesimally small but ultimately real. it is the interchronic pause when nothing is happening. It is the void between events.(George Kubler, The Shape of Time: Remarks On The History Of Things,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 1963, p. 17. )' Coming up with an idea one day and then carrying it out the next is nothing new; that's how we plan every day activities. If I say I will do my laundry tomorrow, it's easy to understand the circumstances necessitating such an action and the logical steps one would take to perform it because both the action and its prescribed time share a close, if not adjacent, temporal space. But if I say I will do my laundry in one year, the temporal connection completely breaks down as it does in this piece to be performed by Sojung on November 13, 2009: Friday, I wash my bedclothes. preparation: quarters ● Taking Kubler's notion of actuality into account, it's not the email Sojung sends out, saying she will wash her bedclothes, that matters, nor is it the action and the artifacts resulting from it a year later. The space in between is what makes this project special, gives it conceptual resonance. It is this seeming void, an engagement with this always absent/always present actuality, that is the real subject of Sojung's project. WORK ● When asked to name her favorite artist, Marcia Tucker, founder of The New Museum and fairy godmother to innumerable conceptual artists, replied 'Tehching Hsieh.(Marcia Tucker, "No Title," White Paper II for AWAKE: Art, Buddhism, and the Dimensions of Consciousness project. Unpublished, 2001. p. 6. )' Hsieh is a performance artist known for making a few year-long pieces demanding total physical and mental discipline. For the purposes of this essay I want to mention his 1980-81 performance known as Clock Piece, where he punched a time clock every hour, on the hour, for one year, taking a picture of himself each time he performed this action. When he finished the work all that was left were the punch cards and photographs that, when assembled chronologically, showed Hsieh's clean-shaven head sprouting a healthy stock of hair. Yet again Kubler's notion of actuality comes to the fore as one understands that the piece is really about the time in-between the punch of the clock, when 'labor,' or 'work,' occurs. Marcia Tucker called each of Hsieh's works 'a lived metaphor – a sustained act of attention to basic facets of life...(Ibid: p.7)' So where do we locate the 'lived metaphor' in Kwon's project? Both Hsieh and Sojung's projects require witnesses, to varying extents. Hsieh needed someone to sign his punch cards and someone to be the witness to these signatures. Sojung's project requires a much more dispersed network of witnesses. The first witnesses are her email recipients, whose very presence in the digital ether validates the reception of the first stage of the work. The dozens of email responses Sojung has received testify to this unseen viewership. The project also demands that these very witnesses create and email their own prescribed actions for her to perform. This is another type of communication, more direct and involved. Lastly, the project requires that Sojung create face-to-face points of engagement with unknown participants. For example: April 6, 2009 I meet a person, name John preparation: John, a camera. ● A photograph of Kwon with John, as well as his lime-green signed witness statement, proves that this action occurred. Unlike with Hsieh's work, Kwon's proof is not kept from public view until the project is completed; the proof of her actions go straight to the project's website for a global audience to see. It is in this short time between the action and the posting of its effects, where her project begins to embody a very peculiar lived metaphor. While Planning A Year articulates questions of labor similar to Hsieh's work, creating a situation where each day is marked by an 'action,' it does so using tools of mass communication – email, the internet, scanners, Youtube, digital cameras and a very recognizable blog format. What does it mean to archive these actions everyday, making their public visibility nearly instantaneous? Perhaps we will better understand the answer to this question once the project is finished. Sojung and I were lucky enough to be Marcia Tucker's students at Otis College of Art & Design 's MFA program the year before she passed away. During that time Marcia confided in me that, in her opinion, Sojung was one of the best performance artists she had seen in years. "Keep an eye out for her; she's going to surprise everyone," Marcia told me. Were she still alive today, I have no doubt Marcia would be proud and pleased with Sojung's Planning A Year project, content to see her predictions come true. ■

Vol.20091114c | 권소정展 / KWONSOJUNG / 權昭丁 / performance